2년 전 수목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을 때 대학 동기와의 통화가 계기라면 계기인데, ‘뭐하고 지내?’라는 안부에 ‘수목원에 있어’가 ‘나무하러 갔어? 너 나무꾼이야?’로 돌아오더라고요. 당시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어느 순간 나를 계속 '나무꾼'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았어요.
솔직히 거창한 의미는 없고 듣다 보니 나무꾼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좋았던 거예요. 그래도 의미 부여를 하자면 땔감이 필요해서 나무를 하러 가는 사람을 나무꾼이라고 하잖아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명확한 목적이 있는 업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죠. 춥다, 배고프다-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한다-땔감이 필요하다-땔나무를 하러 간다.
삶과 생활에 꼭 필요한 부분이고 저에겐 시를 쓰는 행위와 어찌 보면 일맥상통한 것 같아요. 그래도 필명을 무엇으로 할까 계속 고민했는데 나무꾼 외에는 끌리는 게 없더라고요.
리사 : 제가 아는 나무꾼님은 시를 쓰기 시작한지 1년 정도 되었고, 제가 알기로 희곡 대본을 써봤다고 들었어요. 전공을 하지는 않았지만, 강의를 찾아 수업을 듣기도 하고 공모전 응모를 계속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리사님 이야기가 맞아요. 노력 중이에요. 음, 이런 유의 질문을 받으면 조금 민망할 때가 있어요. 직업이나 직책이 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직 출판을 하거나 등단을 한 작가도 아니어서 ‘작가입니다’, ‘시를 씁니다’라고 말하기엔 입이 잘 안 떨어지더라고요. 그냥 습작생 혹은 시를 좋아해서 계속 노력하는 중이예요까지만 이야기해요. 이번 연도 말 공모 준비 중이기도 하고요.
리사 : 이 길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를 좋아했어요. 드라마 광이기도 하고요. 시골에 살면 영화관이 멀기도 하고 문화생활의 매체는 텔레비전뿐이었거든요. 그러다 중학생 때쯤 인터넷 소설이 유행했어요.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 저도 공책 하나를 사서 너도나도 ‘귀여니’가 되어보자 하면서 집필(?)을 시작했죠. 하지만 완결을 내본 적이 없어요. 쉬운 게 아니구나 느꼈죠. 그래도 처음 완결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 연영과 시절 희곡을 창작하는 전공 과제가 있었어요. 학점이라는 제도 덕에 F는 면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새벽까지 썼던 기억이 나요. 꾸역꾸역 써 내려가는 것이 고되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신났었던 거 같아요. 희곡의 마지막 점을 찍었을 때와 제출 후 교수님께 부분 부분 작은 칭찬을 받았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해요.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하고 희열도 느꼈죠. 그 이후 조금씩 혼자 습작을 했던 것 같아요. 짧은 글도 쓰고 나름 시라는 것도 쓰고. 그냥 취미생활이었죠.
본격적으로 마음이 커진 건 수목원 교육생 기간 때였어요.
제가 시를 쓰고 남에게 잘 보여주지 않았는데, 어쩌다 교육생 동기들에게 하나 둘 계속 보여주게 되었어요. 보여줄 때마다 티 안 나게 긴장하고 있었는데 동기들이 하나같이 칭찬만 해주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올랐고, 그전보다 더 열심히 습작했던 거 같아요. 수료 후 다시 진로를 결정할 시기가 되었고 고민이 많았어요.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돈이 안 되고 그렇다고 돈만 벌고 싶진 않고.
다들 그렇겠지만 저는 목적이 없으면 버티기가 힘들어요. 예전 직장 생활할 때 돈은 벌지만 내가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었어요. 무작정 회사를 다니는 건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죠.
전에는 전업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근래에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생활에 쓰이는 비용은 필요하니까 알바를 할 수도 있고, 적당히 내가 할 수 있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을 병행하면 되겠다 하고요. 많은 유명한 작가들도 직장 생활과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고 해요. 퇴근하고 쓰고 주말에는 통으로 쓰고. 초반에는 내 글로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요.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구나,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정리가 됐죠. 이젠 글을 쓰지 않는다면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기도 하고요. 하하.
의미를 계속 찾는 것 같아요. 처음 시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첫 행부터 마지막 행까지 하나의 그림으로 보였기 때문이예요. 시가 사람이 사는 인생을 포함한 글이기도 하고요. 잘못 설명하면 오글거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잘 와 닿을지 모르겠어요. 각자가 하시는 일들이 모두 삶을 담을 수도 있겠죠.
처음 시가 좋았던 이유는 그림같아서예요. 그 보다 더 처음에는 짧아서 좋았을 수도 있고요. 저는 시를 읽으면서 이건 무슨 상황이지, 무슨 말인지 생각하지 않으면서 읽거든요. 소설이나 비문학은 읽으면 이미 한 줄에서 의미를 파악해야 다음으로 넘어가잖아요. 세세히 보면 아닐 수 도 있고 각자가 읽는 것이 다를 수 있지만 소설은 의도가 명확하잖아요. 맥락을 이해해야 넘어가죠. 시는 분위기와 감정이 먼저 읽히는 게 좋았어요. 저는 시를 읽는 순간이 너무 좋았어요.
말, 글귀도 좋아하는데 비유와 묘사가 시에 많이 있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예쁜 말들이 많아서 좋았죠. 마음에 직접 바로 와 닿을 수 있는 글이 시인 것 같아요. 모든 시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요.
의미를 계속 찾아가는 중이에요. 처음 시가 좋았던 이유는 짧아서? 하하. 시작은 이거였던 것 같아요. 계속 찾아 읽다 보니 나중엔 시가 첫 행부터 마지막 행까지 하나의 그림으로 보였어요. 엄청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시를 읽을 때 분위기와 감정이 먼저 다가오는 게 좋았어요.
고등학생 땐 문학을 안 좋아했거든요. 한 줄 한 줄 공부하듯 의미를 파악하면서 읽어 내려가니 어렵고 재미가 없었죠. 어느 시인의 강의를 들었는데 시를 읽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낭독’이라고 하더라고요. 시는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와 리듬에 영향을 주면서 만들어진 창작물이라 낭독을 하게 되면 의미와 별개로 전달되는 힘이 있다고 말이에요. 너무 공감이 되었죠. ‘리듬은 형식뿐 아니라 시의 모든 부분에 관여한다.’라고. 권유한 대로 담백하게 내 호흡대로 읽다 보니 어느새 내 이야기를 하는 듯한 감정이 들더군요. 연기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죠. 아, 그래서 제가 연극을 좋아하나 봐요. 연극도 어찌 보면 굉장히 시적이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리사님도 시를 낭독해서 읽어보세요. 아, 나중에 지인들끼리 낭독회를 열어도 재밌겠어요.
정확히 어떠한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내 삶 중에 느껴지는 것을 시로 옮기는 것 같아요. 시를 쓰는 초반에도 현재 내 감정 상태를 들여다보고 꺼내서 글로 적어 정리를 했죠.
그렇게 시를 쓰며 위안을 받고 치유하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쓰고 싶은지 파악하는 과정이기도 했죠. 그래도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저뿐만 아니라 누구나 부정적인 감정들을 안고 살아가는데 제 시를 읽고 공감하며 위로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잠시라도 마음이 나아질 수 있게.
‘공감’을 말하니 한동안 제 고민거리가 생각이 나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공감 가는 글을 쓰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껴요. 시 합평을 했을 때나 친구들에게 보여줬을 때나 공통적으로 ‘좋은데 어렵다, 이해가 가진 않는다.’ 였죠.
시의 ‘애매성’은 ‘다의성’을 포함한 것이라고 해요. 의미가 다양해 애매하다는 거죠. 그런데 제 시에서는 아마 그냥 애매하게 보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해서 슬프기도 하고 속상했었죠. 그래도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피드백을 참고하면서 노력했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스스로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고요.
리사 : 좋아하는 시인이 있나요?
아 저는 백석 좋아해요. 백석 시인은 교사도 하셨고, 월북하셨죠.:-) 해방되고 나서도 한동안 우리나라에선 금지였대요. 음 그리고 백석 시인은 잘생겨서 좋아요.
제가 느끼기엔 백석 시인의 글은 자신의 관계나 일상생활에서의 감정을 담백하면서도 묵직하게 표현하는 듯한데 그 점이 좋아요.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비슷한 이유로 이성복의 <그날>도 좋아해요.
숨통 트이는 수단? 친구들 만나고 노는 것도 좋고 노동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좋아하는데 진짜 평안해지는 시간은 ‘쓸 때’인 것 같아요. 오롯이 집중해서 글을 쓸 때는 온통 머릿속이 화자의 이야기뿐, 현실의 고민 걱정이 끼어들 틈이 없게 돼요. 작업이 끝나면 현타가 올 때도 있지만 하하.
제가 항상 모호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직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서예요. 답이 나오지도 않고요.
리사 : 살면서 느끼는 게 세상에는 답이 없어요.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하는데 맞는 것 같아요.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이, 스스로 삶을 마무리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섣불리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 안에 단단한 것이 자리 잡고 있지 않으면 흔들리고 쓰러지기가 쉬운 것 같아요. 저도 힘든 상황들이 있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계속 노력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왜 사는지 이유와 목적.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야 해요.
시를 읽을 때 이런 시간이 충족되는 것 같아요. 소설은 이야기를 읽는 것이라면 시는 읽으면서 나와 직결해 생각을 하게 해요. 사색에 빠질 수 있죠. 나를 살필 수 있는 시간이에요. 정해져 있지 않은 방법으로 다양하게 읽힐 수 있으니까요. 밤에 혼자 산책을 하는 것도 나를 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는 것처럼, 이런 시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저도 정리가 되네요. 제가 쓰고,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 같아요. 저에겐 그 수단이 글인 것이고, 각자의 방법이 있겠죠. 자신의 방법을 찾지 못하면 힘들 것 같아요.
앞에 삶의 목적, 존엄성 이런 이야기 해놓고 갑자기 앞뒤가 안 맞는 듯하지만 하하. 저는 명예욕(?)이 있는 것 같아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꼭 이루리라, 이 정돈 아니지만. 흐르는 대로 살다 그것이 따라오면 좋고. 글만 좋은 것이 아니라 존경받는 사람이고 싶어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제가 나쁜 마음(?)을 먹다 가도 내려놓을 수 있으니 하하.
이런 사람이 쓴 글은 어떨까 해서 찾아보게 되는 시인이 되는 거죠. 뭐, 아무도 못 알아줘도 지금보다는 사람 자체나 글이 더 나아졌으면 좋겠네요.
요즘 제 화두는 사랑이에요. 타인과의 사랑이 아니고 내 안의 사랑이요. 예전에는 예민해서 남의 말 하나, 눈짓하나, 상대의 고민들이 제에겐 너무 힘듦이었어요. 그 감정들을 공유하는 것이 버겁고 스트레스로 다가왔는데 생각해 보니 내 안에 타인에게 나눠줄 사랑이 없어서 그런 것 같더라고요. 당연했던 것 같아요. 누구나 자신이 제일 중요하고 먼저니까요. 그래서 내 안에 먼저 사랑을 채우는 것이 중요하겠다 생각했죠. 요즘 애쓰는 중인데 머리와 마음이 전보다 덜 시끄럽네요. 하하.
질문을 받으니 생각나는 수필이 있는데 이문구 소설가의 <성난 풀잎> 중에 한 단락을 인용해볼게요.
서양의 한 자연주의 작가 역시 자연은 인간의 운명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를테면 ⋯(중략)⋯ 넓고 넓은 바닷가의 오막살이집에서 늙은 아비가 고기잡이를 하며 철 모르는 딸과 함께 살다가 배가 뒤집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르쇠를 댄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자연스럽다’라는 말처럼 매몰스럽고 정나미가 떨어지는 말도 드물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이기주의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의 힘을 더하지 않은 채 우주 사이에 저절로 된 그대로 그냥 있는 것이 제 본성이기 때문이다.
어떤 성질이던 태초에 가지고 태어난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순리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더 욕심을 부리냐 아니냐가 문제인 거죠. 식물 안에서도 조금 더 이기적인 친구들이 있죠. 칡이 덮고 있는 상황이 어떤 식물에게는 급박한 상황일 수 있지만, 칡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거예요. 거기에 도태되는 식물을 사람이 도와주는 정도가 되는 것이고. ‘과하다’, ‘과하지 않다’로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아요.
리사: 그 예로 과한 벌채가 있죠.
맞아요. 무엇이든 필요 이상을 취하면 균형이 무너지고 결국 인위적으로 타격을 받은 자연은 그대로 사람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겠죠.
저는 과학적인 발전을 포함, 세상의 발전이 이제는 멈춰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자연도 막다른 길에 다다랐고요. 편리함을 추구하는 건 조금 더 윤택하려고, 혹은 삶에 여유가 있으려고 하는 것인데 그것들을 개발하느라 사람들이 다른 데에서 자발적으로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아무리 코로나라도 사람은 놀고 싶고 나가고 싶어 해서 유동이 줄진 않을 거 같아요. 도리어 더 많아지고 있는 것도 같고요.
전 바닷가 쪽 지역에 살고 있는데, 캠핑족들을 많이 봐요. 코로나 전에도 성수기 땐 있긴 있었지만, 이제는 계절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와요. 그리고 인근 사는 친구들끼리만 아는 장소가 있는데 어찌 알았는지 이젠 그곳에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리사 : 도시에 살면서 놀러 오는 거잖아요. 반대로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해마님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그 답변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어요. 밀도가 낮은 지역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고 앞으로 더 많아질 듯해요. 도시의 정원, 공원 문화의 변화에 발맞춰 지방에서도 각 지역의 특색과 대표 경관을 두드러지게 보여줄 수 있는 코로나 맞춤 공간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나라의 숨겨진, 잘 알지 못했던 문화 관광지가 표출되는 시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매주 새로운 식물을 선정하여 시를 써내려가는 나무꾼의 꾸준함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돌아보곤 합니다. LNM은 앞으로도 좋은 글과 소식을 공유하겠습니다. 나무꾼의 글이 더 빛 날 수 있도록 추진력과 연료가 되어 함께 걸어갈게요. 나무꾼님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진정 팬입니다. 나무꾼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은 댓글을 달거나 응원 메일을 보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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