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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을 이용하는 도시에 대한 짧은 생각

Our life and Plants/Lisa's Writing

by 리사앤마르코 _ LNM 2019. 11. 13.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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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풋이 훌륭한 마케팅, 초록

친한 지인들에게 공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아마도 공공이 조성 및 관리하는 도시 내 공간을 떠올릴 것이다. 경마장도 파크라는것이 신기했던 그 시절 기억을 끄집어내 본다. Landscape, 그러니까 조경이라는 걸 공부하던 학생시절 나는 난생처음 레츠런 파크의 정체를 알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와 유사하게 이천에 있는 우리 집 앞 고깃집이름에도 가든이 붙는다. 잔디밭 위 바비큐 파티 같은 '가든파티'를 연상시켜서일까.

얼마 전 우연히 들은 건설사 임원의 공개강좌가 기억이 난다. 아파트 전체 공사비의 3~5%를 차지하는 조경은 아파트를 대표하는 얼굴이자 이미지로 팔려나간다고 한다. 이 시대에 초록보다 더 좋은 마케팅 수단이 있을까. 건축과 조경을 공부하고, 조경설계사무소에서 일을 했었지만, 특히 현상설계를 할 때면 '조경이 예쁘게 좀 해주세요'를 자주 듣곤 했다. 모두들 초록을 그저 이미지로 생각했던 것 같다. 많은 걸 감춰주고 또 아름답게 하는 화장처럼. 사실 살아있는 초록들은 우리보다 아주 오래 지구에서 살아온 변화무쌍하고 꽤 세심한 존재들임을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초록에 대한 사회적 합의

'식물인간'이라는 말은 식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보여준다고 마이클폴란은 말한다. (얼마 전 읽은 책 '욕망하는 식물'을 인용해 본다)

서울식물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식물원 큐레이팅 관련 창업을 준비하던 친구는 창업 관련 수업에서 "집 앞에도 식물이 많은데, 왜 식물원에 가야 하죠?"라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듣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초록에 대한 인식은 정책에서도 그 맨 얼굴을 보여준다.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을 보호하는 국립기관에서 식물전문가의 비율은 동물에 비해 1/4 정도에 그친다. 이 자체를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묻고 싶은 것은 초록에 대한 사회적합의이다.

초록이 평면화되거나 일시 정지된 동영상처럼 잘 팔려나갈 때, 이러한 식물의 이미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기를, 지적인 욕구가 차가운 심해로 다이빙할 용기를 주기를 바란다. 허학자들이 더 잘 팔리는 세상에서, 이렇게 초록을 이미지를 사고파는 것에 화가 나고, 잘못된 오류는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선배, 동료, 후배들과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가고 싶다. 어떻게 하면 살아있는 생물인 식물에 대한 관심을 길게 유지할 수 있을지 또는 설득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싶다. 과연 식물원, 수목원, 식물문화의 양적 팽창 이후 자연스럽게 질적 향상이 이루어지는 것일지. 지금의 르네상스는 아파트로 양적 팽창한 그 시절 조경시장과는 다를 것이라 믿어본다.

 


도시재생과 초록

도시재생과 초록이 공존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많이 찾고, 상권이 살아나고, 관리인과 토지 소유자 혹은 특정 계급이 미소짓는 그런 것이 도시재생이라면 초록은 수단이자 손과 발이 되어 혁혁한 공을 세울 수는 있겠다. 공을 세운 이후, 살아남아서는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줄다리기를 해야 할텐데, 상생할 수 있을까.

잠들기 전 짧은 생각을 적어본다. 어쩌면 내일, 모레에는 찬양하게 될지도 모를 도시재생이다.

필자는 태안에 거주하며 친구들과 함께 정원을 만들고 있다. 평일 휴가를 내고 정원을 만들고, 오고 가는 사람들을 살피며 많은 생각이 들었던 하루이다. 보행자를 위해 데드스페이스를 공공의 정원으로 만드는 일이라니. 조경을 공부하며 꿈꿔왔던 의미있는일이다. 스스로에게 다음 스텝을 묻고 싶다. 이 다음 공공 정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정말 도시재생만이 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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