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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_ 말하는건축가의 책, '사람 건축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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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사앤마르코 _ LNM 2019. 9. 1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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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공부했어요. 하면 으레 듣는 질문 중 하나로 좋아하는 건축가가 누구냐. 가 있다. 나는 정기용을 말하곤 했는데, 친구들은 아~ 그런사람말고 너의 디자인 취향이 궁금한거라며 다시 답하라고 하곤 했다.

좋아하는 책을 말해보라 한다면, 재미있게 읽은 책, 감명깊게 읽은 책, 평생 가져서 때때로 꺼내어 보고 싶은 책이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부류로 생각나는 전공 책은 피터줌터의 '분위기', 두번째 부류로는 제인제이콥스의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그리고 이 책은 마지막 부류에 속한다. 오늘 잠들기 전 책상에 앉아 다시 꺼내든 책은 고 정기용건축가의 '사람 건축 도시'이다. 대학 졸업반 시절. 이 책을 통해 이론수업에서 익힌 건축사와 물리적인 것들, 사회현상을 두루 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건축이라는 정치,권력의 산물이 과정만으로도 아름답게 살아 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작가와 함께 하는 것 같아 좋았다.

'사람 건축 도시' 표지
이 글에서 제일 많이 사용한 단어인 '삶'은 사람의 살아감을 의미하며, 살고 있음은 시간과 공간 속에 던져진 인간을 의미한다. 적어도 우리가 '사람으로서 살아감'이 누적된 시간 속에 배어나온 공간이야말로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집 속에 있는 그 수많은 물건들과, 우리 이웃들이 정말로 사람들이며 그들이 축적한 시간의 무게와 깊이가 가슴속에 지구라는 별을 느끼게 하는가 한 번 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이다. 우리의 부엌이 우주가 되기 위해서. p19 '지구 위에 사는 인간들, 우주에서 부엌까지'

설계 설명을 할때면 그럴듯한 좋은 말들은 다 붙여놓곤 했다. 가령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며, 땅을 존중한다는 둥. 비움의 미학.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 공간. 삶. 다시 공간... 멋들어지는 추상적 단어로 공간본질이나 깊이감을 이야기하려고 하지만 글, 표현의 한계에 부딪히거나 생각에 매몰되곤 했다. 더 깊고 투박한 본연의 것은 마주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하곤 했다.

건축가들이 말하는 건축마저 다양해졌고, 사람들은 온갖 매체를 접하고 있는 이 시대에 건축을 정의하기란 어려워졌다. 건축과 건설이 혼란스러운 대중문화시대, 그리고 거주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아파트에 당첨되기 위해서 줄을 서는 것이 가족의 행복을 위한 것이 되어버린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건축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상품을 고르듯 '모델하우스'앞에서 자기 집을 꿈꾸며 돈 계산을 하는 우리에게, 집은 더 이상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복권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 동네에 살지 않으며 현대나 삼성과 같은 대기업 이름 속에 살고 있으며, 자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면적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p364 '반복과 차이로서의 건축'

학부 2학년이었던 스무살 우연한 기회로 들었던 조경학과 외부공간설계 수업이 재미있었고, 그 길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조경설계를 하며 주요 소재인 식물에 대한 갈증으로 수목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고, 지금의 나는 수목원에서 식물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조경이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자본으로 공공재를 만들고, 그 소재조차 공공재이며 자연이기 때문이다. (조경설계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시절 쓴 일기를 보면 '나는 자본을 굴리는 노동자'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엄마말대로 나는 이상을 추구하며 사는 것 같다. 붕붕 떠있는 것 같다. 이제 현실에 단단히 발 디딛고 살아야 할텐데.

'기억'을 주제로 하는 건축, 즉 무엇을 기념하는 건축이 이 시대의 도시 속에서, 또한 현대 건축언어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을 타진해보기 위해서다. p349 우리가 남의 죽음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산 사람을 위한 것이며, 그것은 인간의 또 다른 능력이자 힘인 '기억'을 위해서는 거대한 건물이 물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우리들 '내면'속에 있는 '감동'의 다이너미즘을 유발시키는 그 무엇이다. p351 '전쟁기념관 : 권력과 물신주의'

2012년도에는 정기용에 대한 '말하는 건축가'라는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건축 전공이 아니더라도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지인이라면 추천할 것 같다. 2011년 별세한 건축가의 인생과 건축관이 짧은 러닝타임안에 잘 녹아 있다. 당시 인기가 많아 서울시청에 관한 영화 '말하는 건축'도 후속으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기용건축가의 건축이 궁금하다면, '감응의 건축' 책을 추천한다. 정기용의 무주 공공프로젝트를 더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2008년도 출간된 책을 1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도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바로 오늘의 내용인것 같아서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2008년 출간된 책이 맞다.

종부세를 내는 사람들이란 전 국민의 1.5퍼센트에 불과한데 그들의 부동산값을 잡아야 집값이 안정되는 것일까? 강남의 주택투기 자본은 강남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인가? 사실 국민 모두가 투기하도록 자유방임한 지난 세월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것이며, 아직도 올바른 주택정책이 실현되지 못하는 까닭은 대체로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임대주택만 많이 공급하면 서민들의 주거는 진정으로 안정될 것인가? 주택시장이 있다고는 하나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따라 정상적으로 가격이 조절되는 논리를 한참 벗어났을 때 공공이 개입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천민자본주의의 연습은 이 정도면 끝날 때가 되었다. 아무리 언론이 떠들고 아무리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 값을 잡겠다고 하여도 이런 전쟁에서 건축인들의 임무는 전선을 바꾸는 일이어야 한다. ... 아파트 값을 얼마만큼 내려야 서민들이 접근할 수 잇는가 고민할 일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어떤 수단과 지혜를 동원해야 서민들의 주택을 강남 사람들도 와서 살고 싶어할 환경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가 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이는 남들이 대신할 일이 아니라 건축계의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발언하고 실천에 옮기는 일에 협력해야 할 의무사항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 년간 획일화된 전 국토의 주거환경에 대하여 건축인들은 과연 비난만이 아닌 어떤 대안을 만들었으며, 실천을 위해 어떤 운동을 펼쳤는가? 각자 반성해볼 일이 아닌가! 전 국민이 부동산의 탁류에 휩쓸리지 않고, 다양하며 다채로운 집에서 살기를 희망하도록 할 학습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를 올바로 묻는 것. ... p156-158 '공간의정치학'

이 책에서 정기용씨의 문체는 짧고 무겁다기 보다 가볍고 길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필사를 하다보니, 앞뒤 문장과 맥락이 편집되어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좋은 구절이 있다면 책을 다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구절들이 다 좋아서 책을 옮겨써야 할 지경이다..

건축은 프로그램이나, 대지, 사용자에 따라 예산이나 면적, 수명이 매우 다르다. 손끝에 닿는 가장 가까운 건축은 물론 '집'인데, 집에 대한 정기용의 생각은 이 책에서 신나게 들을 수 있다. 건축은 이래야 한다. 생각하고 말하는 건축가들도 많지만, 정기용은 살아가고자 노력하신 것 같다. 깨어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마샤 데이비스의 말처럼 삶은 그저 숨을 쉬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환경이나 주어진 것들을 탓하기 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고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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