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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사랑, 생명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담은 소설 '지구에서 한아뿐'_ 정세랑 작가 장편소설 /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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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사앤마르코 _ LNM 2019. 7. 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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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물꾸물한 오늘 날씨와 잘 어울리는 소설을 읽었다. 기억하기로 정세랑 작가의 소설은 처음인데, 장편인 듯 단편 같은 이 소설에서 작가는 약간의 SF와 로맨스, 환경주의와 인간애를 가볍게 버무렸다. 소설의 제목처럼 작은 지구와 그 안에 작은 서울, 거창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은 주인공의 삶으로 우주적 사랑, 배려와 존중을 담아낸다. 독자가 주인공의 눈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도록 하는 건 작가와 독자가 만나 영향을 주고받는 마법 같은 일이다.

지구에서 한아뿐, 표지디자인

이 책은 어제 옆 기숙사에 방문했다가 만난 친구가 가장 애정하는 작가의 소설이라며 빌려준 따끈따끈한 소설이다. 평소 정세랑 작가를 좋아해 미리 예약하여 구매했다는 소설 첫 장에는 친필 싸인도 있었다. 소설을 읽고 나니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고 채식을 하고 있는 친구가 이 작가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두 시간 정도 책을 읽으며 주인공 '한아'가 운영하는 골목길 작은 '환생' 가게나 광합성인들이 사는 지구를 닮은 별에 따라가 보았다. 어쩐지 오늘 날씨와도 닿아있는 이 소설의 착 가라앉은 분위기와 표지 속 돌아앉은 한아씨가 오늘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한아와 경민의 인연에 대해 생각해본다. 표지를 보고 고민하다 지나쳤던 '보건교사 안은영'도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니 이제는 기회를 만들어 읽어봐야 겠다. 이 글을 볼 지 모르지만, 정세랑 작가를 만나게 해 준 친구에게 감사를 전한다.

"어찌 되었건 내가 본 너는 엄청나게 일관된 사람으로, 혼자 엔트로피와 싸우고 있는 거 같았어. 파괴적인 종족으로 태어났지만, 그 본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지. 너는 비 오는 날 보도블록에 올라온 지렁이를 조심히 화단으로 옮겨주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고래를 형제자매로 생각했어. 땅 위의 작은 생물과 물속의 커다란 생물까지 너와 이어지지 않은 개체는 없다는 걸, 넌 우주를 모르고 지구 위에서도 아주 좁은 곳에 머물고 있었는데도 이해하고 있었어. 나는 너의 그 선험적 이해를 이해할 수 없었어. 인간이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이 끔찍한 행성에서, 어떻게 전체의 특성을 닮지 않는 걸까. 너는 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너는 너무 멀리 있는데, 나는 왜 널 가깝게 느낄까. 내가 네 옆에 있는 바보 인간보다 더 가까울 거라고, 그런데 그걸 넌 모르니까, 전혀 모르니까, 도저히 잠들 수 없었어. 꿈을 꿀 수 없었고, .... 나 역시 어느 순간 내가 속한 곳을 닮지 않게 된 거지. 그러다가 망원경 조종법을 잊게 될 정도였어. 한 곳에 고정되어버렸으니까." p102-103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말하는 것처럼, 작가도 마음으로 낳은 소설 속 인물들을 모두 사랑할 것이다. 다만 소설 속 지면을 할애하는 비율로 혹은 작가가 보여주는 인물의 특정한 모습으로 작가의 생각을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한아와 경민은 작가의 인간애, 생명에 대한 존중을 대변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 자연환경보호와 인간의 인위적 환경파괴에 대한 반성과 대처, 유행을 추구하기보다 단단한 중심을 지키고 살아가려는 자세와 같은 것들은 두 주인공의 태도와 대화에 담긴다.

한아만이 경민을 여기 붙잡아두던 유일한 닻이었는지 몰랐다. 닻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유약하고 가벼운 닻. 가진 게 없어 줄 것도 없었던 경민은 언제나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종국에는 지구를 떠나버린 거다. 한아의 사랑, 한아에 대한 사랑만으로는 그 모든 관계와 한 사람의 세계에 얽어매는 다정한 사슬들을 대신할 수 없었다. 역부족이었다. 인정할 수 밖에. 닻이 없는 경민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을까? p146

반면 유리와 엑스에게서는 솔직하거나 자유롭다거나 하는 매력적인 부분이 가까운 주변인물에게는 인내심으로 품어주고 배려해야 할 '뾰족한 부분'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몇 안 되는 등장인물들은 성장과정을 보여준다거나 이면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소설 전개 방식이 변화무쌍한 인물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어서 대화를 보고 있자면 독자 또한 이와 비슷한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서울에 살고 있지만 그아이를 포함한 한평정도 땅을 한삽 푹 떠서 러시아로 가져가도 누가 모를 정도로 한 곳에 뿌리내리고 싶지 않아 하는 친구라던가, 자기주장이 솔직하고 유쾌하여 인기가 많지만 의도치 않게 적이 생기면 여린 마음으로 힘들어하는 친구. 엄청난 인플루언서들을 좋아하며 자신도 그러한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친구. 내 주변에도 이런 친구들이 있다. 오히려 배려나 인내, 존중 같은 따뜻한 면이 부각된 주인공들은 소설 속 솜사탕이나 그보다 더 달달하게 표현되는 로맨스처럼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때 내 자리와 모든 걸 넘기고 떠난 건, 짐작처럼 이기적인 행동은 아니었어. 언제나 충분히 채워주지 못했던 걸 알고 있었으니까. 네가 티를 낸 건 아니지만, 티를 내지 않아서 더 신경쓰였거든. 너무 애쓰고 있는 것 같아서. p205

엑스의 후회나 행동은 독자에게도 안타까움과 무력함을 느끼게 한다. 엑스에게 필자가 최근에 접한 글귀를 인용해서 한마디 전하고 싶다.

"삶이 희한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듯이 때로 평범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주 하찮고 시시해 보이는 순간을 나중에 가장 아끼게 된다. 당신의 인생에서 놀라운 일을 하려고 노력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당신의 꿈을 지지해 줄 사람들이 없다면 당신의 노력은 늘 미완으로 끝난다." 제프고인스, 일의기술

스물여섯에 쓴 소설을 서른여섯에 고쳐서 출간했다는 작가의 용기와 노력에 감탄한다. 자신이 만난 멋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엮었다는 작가처럼 주관이 담긴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또 어떤 면을 보여줄 지 작가의 다른 장르의 글과 소설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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