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제주 여행이다. 제주도 정원이 아름다운 곳,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어 고민하다 송당나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지난 월요일 혼자 훌쩍 제주도로 떠나왔다. 성산 쪽 플레이스 캠프에 숙소를 잡고 오늘은 어딜가볼까 고민하다가 오전에는 숙소에서 전기 킥보드를 빌려 광치기 해변을 다녀오고, 오후에는 송당리에 있는 송당나무 카페에 다녀왔다.
성산로타리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리고, 또 20분 정도를 걸어 카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걸어서 왔다고 하니 사장님은 꽤나 놀라신 눈치였다. 달리는 차창의 풍경과 달리 느리게 걷는 속도로 보는 풍경과 대중교통을 통해 느끼는 일상생활의 분위기는 여행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혼자 걷는 제주도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여럿이서 오는 투어가 주는 즐거움과는 여행의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길 왼쪽으로 소들이 쉬고 있고, 마굿간도 있어서 분뇨 냄새를 맡으며 한 20분 정도 걸었다. 위 사진은 길을 걸어가며 송당나무 정원을 바라본 모습이다. 땅이 약 1600평정도 라고 하셨는데, 건물 안쪽으로 깊이 있는 정원이 조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부가 만든 이 곳은 원래 카페가 목적은 아니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꽃집을 운영하시다가 정원을 만들게 되셨는데, 정원을 공개하니 사람들이 여기 커피는 없냐고 물어서 커피를 팔게 되었다고 하셨다. 커피를 팔 줄 알아다면 더 넓게 지었을 것이라고 얘기하셨다 :) ㅎㅎ
꽃집을 운영하셨던 터인지 송당나무에서 보이는 초화류들은 정말 다양했다. 룸메이트가 키우던 삼나무 블루버드나, 화려한 꽃이 좋아 텃밭에 심었던 모나르다도 있었다. 가격대도 양재에서 보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오랫동안 거래해오시던 육지의 어느 곳에서 받아오시는 것이 아닐까. 제주도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초화류를 만날 수 있다니 신기했다. (송당나무에서는 다양한 초화류를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내부에도 칼라데아 종류, 베고니아 종류, 박쥐란이나 하트펀 같은 고사리 종류와 페라고늄 등 다양한 원예용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내부가 크지는 않지만, 천장고가 높아서 시원하였다. 긴 원목 테이블이 세 개정도 놓여 있었다. 제주도에서 펜션을 운영하시는 분들이나 정원을 가꾸시는 분들의 카운슬링이나, 원예 관련 수업도 이루어지는 공간이라고 한다. 차를 한잔시키고 정원으로 나왔다. 토분 티라미수가 9천 원이었는데, 토분 안에 있는 케이크를 먹고 토분은 가져가는 모양이다. ㅎㅎ 재미있는 아이디어 상품 같다.
카페 앞으로 나오면 정원을 볼 수 있다. 오른쪽 넓은 땅에는 콩을 심으실 것 같다고 하셨는데, 이쪽 지역이 원래 제주에서 귤나무가 없는 유일한 지역이라고 하셨다. 귤나무에 열리는 귤이 맛이 없고, 주로 뿌리 작물들을 많이 키우는데 근처 구좌를 예로 드시면서 당근이 맛있지 않냐고 하셨다. 흙도 그렇고 이런저런 이유로 나무를 많이 심지는 않으셨다고 하셨다. 카페 건물 뒤와 정원 주변을 둘러싸는 교목들이 공간을 잘 잡아주지만, 정원에는 아직 크게 자란 교목이 별로 없어서 정원 앞에 서면 그 깊이감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막상 정원 안으로 들어와 카페 쪽을 바라보면 제법 큰 정원이라는 게 느껴진다.
정원 내부에 동선을 구불구불하게 돌려 여러 개로 베드를 나누어 주제별로 식재를 하셨는데, 책으로만 보던 플랜팅 디자인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색감이나 개화기, 초장 등 이 combination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식재하였을지... 고민의 시간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털수염풀과 사이에 심으신 교목 한주가 정원의 중심을 잡고 있었다. 송당나무를 방문한 바로 다음 날 갔던 '베케'와 털수염풀을 사용한 방법이 달랐다. 정원이란 무엇이 더 낫고 더 잘했는지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한 주관적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또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고 전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히 전달되었다면 이들 모두 훌륭한 정원 중 하나로 꼽힐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꿈꾸는 정원이 있고, 신념을 가진 정원가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행복했고, 훌륭한 정원들을 직접 보니 나도 머지않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 또 앞으로 더 열심히 식재 공부를 해야겠다 다짐하게 되었다. 역시 직접 발로 뛰는 살아있는 경험은 엄청난 자극이 된다.
정원을 보고 주인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창원에서 혼자 정원을 만들고 있는 친구 생각이 났다. 정원을 가꾸고 개방하기까지 부부가 이년 반이 걸렸다고 하셨는데, 창원 친구 이야기를 하니 혼자서는 많이 힘들 거라고도 이야기를 하셨다. 외롭게 긴 싸움을 하고 있을 친구를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서늘하기도 하다. 근처 제주도 상점에서 귤청이라도 사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봐야겠다. 그리고 다음 정원 여행은 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지. 이렇게 아름다운 꿈을 함께 꿀 수 있다면 꿈꾸는 순간도 황홀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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