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한국정원문화연구소 「월하랑」에서 진행하는 경복궁 정원 투어에 참여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기획하고 추진하여 이루어진 출장으로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준 동료에게도 고마웠고, 몇 달간 노래를 부르던 투어가 성사되어 행복했다.
학창 시절 「월하랑」 대표님의 특강을 듣고 인상 깊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이번 투어가 기대가 많았다.
대학원 시절 들었던 특강에서 대표님은 직접 한국 전통 사찰을 두루 다니시며 공부하신 것들을 설명해주셨었는데, 건축이나 조경뿐만 아니라 역사, 설화, 학계의 주장 등 폭이 넓고, 그 깊이가 깊어서.. '정말 재미있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면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부러워하던 기억이 난다.
다시 투어로 돌아가자면, 월하랑 투어는 보통 5월까지 이루어지고, 6월에는 더위로 인해 잠시 쉬어간다고 하셨다. 6월의 마지막 투어에 참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투어는 오후 1시 반에 만나서 약 2시간 반가량 이어져 4시까지 진행되었다. 정원의 식재보다도 왜 그자리에 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공간에 대한 의미와 구조, 시설물 등 전통정원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투어였다.
투어는 먼저 광화문에서 시작한다. 이야기는 왜 개성이 아닌 한양이었는지 부터 시작한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풍수지리상 액운을 막기 위해 정도전이 취한 4가지의 방법, 일본이 어떻게 한양의 정기나 정신을 끊으려 하였는지. 우리에게 보이는 광화문과 광화문광장 모습 아래 숨겨진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옛 사진이나 지도, 비교 이미지 등으로 함께 설명을 해주셔서 좋았다. 아, 한양의 뜻도 재미있었다. 다른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투어를 통해 직접 들으실 수 있으니 생략하기로 한다. 유흥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나 서울 편이나 조경기사 시험을 준비하며 공부하던 조경사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틀어진 축에 대한 이야기가 항상 언급되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경관축, 그리드, Axis 이런 것들은 설계를 더 그럴듯하게 설명하기 위한 사기? 이자 뻥... 구라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보이지 않는 프레임들이 많은 사람들의 삶을 규제하고, 또 이런 삶의 행태를 담는 그릇이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건축이나 조경, 물리적 환경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고민해야 할 숙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생각 없이 주입되는 수많은 미디어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해야 하는 지금이 미디어 홀로코스트 시대라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약 500년간 이어져온 이 시대는 유교나 신분, 딱딱하기만 위계가 공간으로 이어져 여과 없이 드러나는 공간의 위계사회가 아니었을까. 수많은 공간의 규제 속에서도 유머와 삶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 선조들의 정신을 보고 배운다. 2019년의 서울에서도 도시의 공간은 누군가를 고립시키고, 특정인들을 위해 테두리 쳐지지만, 우리도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나 해학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궁으로 걸어가며 오후 2시에 이어지는 수문장 교대식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궁이 나누어지는 공간에 대한 설명, 계단이나 다리의 문양 등등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유머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여 주셨다. 박석과 단차에 대한 설명으로 비오는 날의 치조 공간을 생생하게 상상해볼 수 있었다. 여러 뷰포인트에서 사진을 찍고, 공간들과 몇 개의 문을 거쳐 교태전의 후원 아미산을 볼 수 있었다.
교태전 아미산은 조경사의 단골문제로 출제되는데, 경회루를 파고 나온 흙을 쌓아 만든 것이 교태전 아미산이라는 정설이 왜 잘못된 말인지. 일본이 얼마나 정교하게 맥을 끊으려 노력했는지. 설명을 듣고, 또 이미지를 보고 알 수 있었다.
화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필자가 나이가 들어 특정한 방식을 반복하거나 고집하게 된다면, 그래서 언젠가 정원 기법이라는 걸 만들게 된다면, 이용자의 경험을 담고, 특수한 환경에 대처하고, 시대와 삶을 담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궁의 전통정원에는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 이상의 의미와 뜻, 세대를 거쳐 이어져 가야할 정신이 담겨있다는 걸, 아는 사람만이 알겠구나. 공부한 만큼 알겠구나 느낀 순간이다.
이어서 경회루와 향원지 투어도 진행되었다. 경회루 앞에서 카페와 화장실을 들러 잠시 쉬어갈 수 있는데, 버드나무 그늘이 펼쳐지는 경회루 풍경이 아름다워 꿀처럼 달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설명을 들으며 상상한 경회루의 핫한 밤의 모습이 생생하다. 아마도 상상하는 이미지는 각자 다를 수도 있겠다.
향원지는 공사 중이었고, 어떤 점이 잘못 복원되었는지 설명해주셨다. 반영이 흐려지지 않도록 물을 천천히 흐르게 하고, 물고기들이 놀라지 않게 따뜻한 물을 흘려보낸 계획이 감동적이다. 옆에 있는 고종의 도서관이 참 아름다웠는데, 개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안 쪽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혼자 갔으면 몰랐을 터이다. 다음에 또 방문하게 된다면 오래오래 앉아있다 오고 싶은 곳이다.
월하랑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전통정원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검이불루 화이불치이 뜻을 설명하고 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아름다움. 많은 것들을 관통하는 말이지 않은가! 나도 이런 삶을 살아야지.
이 글을 읽으실지 모르겠지만, 더운 날 열심히 설명해주신 월하랑에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뜻깊은 투어였다. 앞으로 한국전통정원의 아름다움에 관한 투어 혹은 다른 활동에 또 참여할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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