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겨울부터 6년 동안 살며 거리의 변화를 지켜본 이 자취방은 2호선 한 자락에 붙어있는 역에서 가까운데, 일일 유동인구가 약 13만 명 정도인 밀도 높은 도심에 있어 좀처럼 흙을 밟을 일이 없다. (태안에서 서울을 올라오며 가장 바뀐 것은 아무래도 운동화인데, 더러워질일은 없지만 더 깨끗하지는 않다. 아무튼 '자연'이나 서식지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고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다보면, 아침 점심 잠깐씩 만나는 가로수가 계절의 변화를 일깨워주곤 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봄과 여름 사이에 올라오는 작고 초록초록한 은행나무 신엽이 위안이 되었다.
1995년 이후 서울의 가로수로는 은행나무가 가장 많다. 서울시 통계연보에 따르면 1975년에는 수양버들이 가장 많았고 [당시 서울시 가로수 총 6천8백여 그루, 꽃가루가 많이 날려 가로수로서 비 선호화], 1985년에는 양버즘나무가 가장 많았다 [당시 서울시 가로수 총 20여만 그루, 속성수인 양버즘나무는 시설물 피해를 막기 위한 가지치기로인해 점차 비 선호화]
은행나무는 화석식물이라 불리울 만큼 은행나무문에서 시작하는 유일한 종인데, 현재는 여러 품종도 재배되며 인기가 많다. 은행나무는 중국이 자생지이고 소수의 서식지가 있지만 야생에서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는 IUCN 멸종위기종에 속한다. 유전자풀이 좁아 우스갯소리로 사람이 유일한 매개 동물이라고도 하는데, 이 독특한 식물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정리하려 한다.
송파구 몽촌토성역의 위례성길은 은행나무길 명소이다. 종로구 정동길과 남산 둘레길도 손꼽히는 은행나무 가로수길 명소이다. 서울 사는 나무를 쓴 저자 장세이는 잡지의 한 인터뷰에서 이시대의 결핍된 정서와 가치를 두루 가진 나무이자 사라져 간 정자목, 느티나무를 서울을 상징하는 가로수로 꼽는다. 도시의 가치는 센트럴 파크가 아닌 가로수 길이라 말하는 그는 서울에서 가장 아끼는 가로수 길로 당인리 발전소와 절두산 성지를 잇는 느티나무 가로수길을 꼽는다. 관광이나 경관적 아름다움이 아닌 가로수의 경제적 가치를 환기해 볼 수 있다. 서울시 노원구 가로수 대상으로 에너지 저감효과, 이산화탄소 흡수, 우수 유출 저감, 대기질 향상을 기준으로 가로수의 가치를 측정한 연구가 있다. 이 연구에서는 플라타너스가 가장 가치가 높았으며, 메타세콰이어, 느티나무, 소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순으로 나타났다. (2014, 이지영)
서울시 공개자료 (서울시 가로수 현황, 2018) 에서는 25개 자치구별, 가로별 가로수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서울시에서는 2002년부터 가로수를 관리하는 조례(서울시 가로수 조성 및 관리 조례)를 만들어 가지치기뿐만 아니라 위치나 식재시기, 병해충 방제 등 가로수 조성 및 관리하기 위한 기준을 두었으며 관리주체는 25개 자치구이다.
다른 나라의 가로수 관련 자료를 찾던 중 홍콩의 밀도 높은 도심화가 나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를 발견하였다. 홍콩은 개발 밀도가 높고 기존의 녹지나 식재공간이 부족한데, 연구에서는 도로변 토양 품질 저하 및 화학적 물리적 제약 등에 대한 대안을 말하고 있다. A planning strategy to augment the diversity and biomass of roadside trees in urban Hong Kong.
Impacts of intensive urbanization on trees in Hong Kong, CHI YUNG JIM, 1998
결론 요약
지리적인 현실 때문에 홍콩에서 나무 성장의 기회는 본질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제약조건은 개발도상국보다는 선진국과 더 유사하다(Olembo & de Rham 1987). 건물, 도로, 공터, 녹지 등 모든 것을 위한 토지의 근본적인 희소성은 모든 것이 함께 망원경처럼 되어 있는 전형적인 건축 양식을 만들어냈다. 공간 활용 측면에서 보면 수평적 도시 못지않은 수직적 도시다. 공동체는 개발 가능한 토지의 심각한 부족과 극도로 비싼 부동산에 대해 의식하고 있다. 도로 위에 건설되지 않고 도로용으로 쓰이는 도시 토지가 낭비된다는 개념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일반적인 태도는 공공사업에서는 덜 그렇지만 대부분의 민간사업에서는 강하게 표현되는, 어메니티 트리 심기에 대한 낮은 우선순위에 동의하는 것이다.
그 결과 공간에 대한 매우 치열한 경쟁(Urbanet al. 1988)은 억압적인 성장 환경을 조성하고, 작은 도시 매트릭스에 나무를 삽입하는 것을 어렵게 하며, 활발한 나무 성장을 불가능하게 하고,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암울한 시나리오는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이 덜 건강한 나무와 나무의 손실을 받아들이도록 무의식적으로 조건화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사회적 수용은 되돌리기가 쉽지 않지만, 교육적, 공공성 프로그램은 오해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나무와 건물의 시너지적 공존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개발 프로젝트는 중요한 도시 기반 시설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CHI YUNG JIM, 1998)
22년 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지금 서울에도 적용 가능한 연구자료를 읽으며 아직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반면 여기서 과연 작은 변화가 가능할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적합하지 않은 환경과 수종, 규제와 관리가 맞물려 돌아가는 현황에 안주하지 않고 "시너지적 공존"의 가능성을 알린다면 작은 파장이 큰 물결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며 관행에 맞추어 하나의 나무를 더 심기보다 더 나은 방안,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중요한 한 그루가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자료
가로수 가치 추정 연구, 이지영, 2014
Impacts of intensive urbanization on trees in Hong Kong, CHI YUNG JIM,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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